파울루스 오로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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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로시우스.png
이름
파울루스 오로시우스
(Paulus Orosius)
출생
375년 또는 385년
사망
미상
직업
성직자, 역사가

1. 개요
2. 생애
3. 저서
3.1. 이교도에 대항한 역사
3.2. 프리실리아주의와 오리게네스주의자들의 오류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경고와 상기
3.3. 펠라기우스에 대한 변호



1. 개요[편집]


서로마 제국 시대에 활동한 가톨릭 성직자이자 역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로, <이교도에 대항한 역사>, <프리실리아주의와 오리게네스주의자들의 오류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경고와 상기> 등을 집필했다.


2. 생애[편집]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단지 375년 또는 385년에 히스파니아 갈라키아(Hispania Gallaecia)의 브라가에서 상류층 가정의 자제로 출생하여 좋은 교육을 받았고 20세 이전에 성직자가 되었다는 것만 알려졌다. 그는 414년 이민족의 침략으로 위험해진 히스파니아를 떠나 북아프리카의 히포에서 왕성한 성직 활동을 수행하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탁월한 언변과 이단에 대한 강렬한 투쟁심을 마음에 들어했고, 415년 예루살렘에 보내 이단으로 여겨지는 펠라기우스와 논쟁을 벌이게 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주교 히에로니무스와 신학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펠리기우스의 주장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뒤 이단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공의회에서 펠라기우스와 대결했다. 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설파하자, 펠라기우스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Et quis est mihi Augustinus?

나한테 아우구스티누스란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공의회는 예루살렘 대주교 요한 2세가 펠라기우스를 지지하는 바람에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고, 펠라기우스의 지지자들은 로마에 오로시우스의 정통성을 문제삼고 그야말로 이단이라고 고발했다. 그는 이 비난을 뿌리치기 위해 펠라기우스를 정죄하면서 자신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Liber Apologeticus contra Pelagianos(펠라기우스에 대한 변호)>를 집필했다. 416년 초 팔레스타인을 떠난 그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순교자 성 스테파노의 유물을 브라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히포에 들러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히에로니무스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후 브라가로 돌아간 그는 <이교도에 대항한 역사>와 <프리실리아주의와 오리게네스주의자들의 오류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경고와 상기>를 416~17년 무렵에 출간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3. 저서[편집]



3.1. 이교도에 대항한 역사[편집]


Historiae Adversus Paganos

총 7권으로 이뤄진 오로시우스의 <이교도에 대항한 역사>는 지중해 세계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총괄한 세계사다. 그는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타키투스, 유스티누스, 수에토니우스, 플로루스, 성경, 그리고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등 수많은 자료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해악보다 선한 일을 더 많이 했다고 설파하며,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멸망으로 인도했다는 이교도들의 주장을 논박했다. 그러면서 천지창조에서 자신의 시대에 이르는 긴 역사를 어찌 다룰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세계의 창조로부터 로마의 건국까지의 기간에 대해 말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의 기간에 대해 말할 것이며, 예수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기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회상할 수 있는 한, 마치 망루에서 보는 것처럼 바라보면서, 나는 인류의 갈등을 제시하고 탐욕의 횃불에 의해 타오르고 있는 세계의 여러 부분에 대해 말할 것이다.


오로시우스는 제1권에서 천지창조부터 대홍수, 그리고 로마의 초기 건국까지의 세계사를 서술했다. 제2권은 로마의 건국부터 기원전 390년 알리아 전투 참패 후 로마가 갈리아인들에게 함락당할 때까지의 역사와 이후 다른 도시들과의 전쟁에 대해 설명한다. 제3권과 제4권은 알렉산드로스 3세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 포에니 전쟁고대 카르타고의 멸망을 다뤘다. 제5~7권은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뒤 그의 시대까지의 로마 역사를 다뤘다.

오로시우스는 이 저서에서 예수가 등장하기 전 이교도들의 역사와 예수가 도래한 이후 그리스도인들의 현재를 비교하면서, 예수가 도래하기 훨씬 이전부터 위대한 민족들의 흥망성쇠가 이뤄졌으며 로마 역시 이전의 도시와 국가들이 무너진 것과 같은 이유로 무너졌는데 이를 그리스도교 때문으로 간주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교가 도입된 이후로 세상이 개선되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렇지만 이교도들 중에서도 본받을 만한 인물들이 많았다며 그들의 활약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등, 이교도들을 회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그는 작품 전반에 걸쳐 바빌로니아, 이교도 로마, 마케도니아, 카르타고의 4대 제국이 하나의 위대한 문명의 폐허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다섯 번째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수용한 로마 제국이 될 거라고 밝혔다. 그는 이 4개 제국이 같은 방식으로 발전했으며 유사점이 많았다고 봤다. 또한 그는 자신이 설명하는 도시와 나라의 위치와 환경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제1권의 두 번째 장에서 지중해 세계 전반의 지리적 설명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이교도에 대항한 역사'는 출간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수도사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더불어 이 책을 앞다퉈 필사했으며, 라틴어로 집필된 원본을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전 유럽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 역시 일찌감치 이뤄졌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대학들도 이 저서를 고대사 교재로 애용했다. 무슬림들도 이 책의 중요성을 인정해 코르도바의 알 하캄 2세 치세에 'Kitāb Hurūshiyūsh'로 알려진 아랍어 번역서가 집필되기도 했다. 현재 200개가 넘는 사본이 남아있다.


3.2. 프리실리아주의와 오리게네스주의자들의 오류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경고와 상기[편집]


Consultatio sive commonitorium ad Augustinum de errore Priscillianistarum et Origenistarum

414년 브라가를 떠나 아프리카로 향하는 오로시우스의 여정과 히포에 도착한 후 아우구스티누스와 나눈 신학적 토론을 담은 신학서다. 프리실리아주의와 오리게네스주의의 이론을 요약하고, 이를 강력히 논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프리실리아주의자들은 천상의 왕국과 지상의 왕국이 존재하며, 천상의 왕국은 행복과 축복으로 가득하지만 지상의 왕국은 죄악과 암흑으로 가득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은 천상의 왕국에서 파생되었지만 물질적인 몸에 갇혀서 추악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인간의 구원은 죽음으로써 물질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성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영감에 의존했으며, 절대적으로 선한 신이 추악한 지상을 창조했을 리 없다며 천지창조를 부정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로시우스와의 담화에서 이러한 주장은 지상에서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전통적 해석을 부정하고 개인의 영감에 의존한다면 그릇된 해석을 할 여지가 많다고 비판했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의 조화 및 융합을 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성서의 비유적 해석, 즉 알레고리 방식을 동원했다. 그 과정에서 예수 이전의 철학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하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 철학을 이교도의 전유물로 간주하고 부정하려는 아프리카 학파와 갈등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종국에는 마귀마저도 하느님과 화해하고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이야기가 유포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분개하여 <신국론>에서 오리게네스를 강력히 비판했는데, 오로시우스의 저서에서도 오리게네스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이 잘 실려 있다. 하지만 현대 신학자들은 오리게네스가 마귀 역시 구원받을 거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본다.


3.3. 펠라기우스에 대한 변호[편집]


Liber Apologeticus contra Pelagianos

415년 오로시우스가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뒤 펠라기우스파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자 이를 반박하고자 집필한 작품이다. 예루살렘 대주교 요한 2세 등은 그가 신의 개입이 있더라도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신이 전능하다는 진리를 부정했다며 이단으로 간주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공의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신학에 대한 비방을 논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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